고니시 유키나가 관련 요 고니시는 전쟁하기 싫어서 전쟁전부터 사위인 대마도주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전쟁중에도 심유경하고
고니시 유키나가 관련 요 고니시는 전쟁하기 싫어서 전쟁전부터 사위인 대마도주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전쟁중에도 심유경하고
고니시는 전쟁하기 싫어서 전쟁전부터 사위인 대마도주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전쟁중에도 심유경하고 사기치고 이랬다더니 왜 전쟁 선봉장으로 항상 나선것이며 전쟁 이후에 세키가하라에서 왜 히데요시 편으로 참전한건가요? 히데요시땜에 원하지도 않은 전쟁에 나서서 자기세력 붕괴됐다더니 그럼 히데요리를 치는편으로 섰어야지 왜 굳이 멸문길을 자처한건지 의문이라서 한번 여쭤봅니다 일본사 잘 아시는분이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런 행동들은 “전쟁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라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복합적인 군사적·정치적 현실들 속에서 나온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 군인으로서, 당시 전국시대의 대전쟁 속에서 군사적 충성과 개인의 안위 사이의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비록 전쟁 전에 자신과 가문의 안보를 위해 일보 후퇴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한 번 전쟁이 발발하면 충성을 다해야 되는 일본의 군사적 체제 아래에서 전면에 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군사적 사명이자 숙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체제 하에서는 모든 대영주들이 총동원되서 전쟁들에 참전해야 됐습니다. 고니시가 선봉장 역할을 수행한 것도 이러한 군사 체제 내 명령 체계와 당대의 전쟁 운영 방식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말 세계는 일본의 통일과 대외 팽창, 그리고 강력한 외세(명나라)의 영향 아래 격동하는 시기였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는 개인적 기호보다 전체 국제 정세와 군사적 충성 관계가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자신은 필리핀을 식민지화하고 동남아시아 전역을 식민지화한 후 인도까지 진격하려는 군사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당시 일본군의 군사력이라면 필리핀 정도는 손쉽게 식민지화가 가능한 수준이긴 했으니까요.
전쟁 초기부터 선봉장으로서의 역할은 부대 사기와 공격력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고니시 유키나가 장군은 뛰어난 전투 감각과 용맹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도 앞장서 싸우는 것이 요구되기도 했습니다.
즉, 전쟁이 개전되면 그의 군사적 능력과 명령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선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키가하라 대전쟁 때에도 내부 배신과 체제 내 갈등이 극심했기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소속의 서군이 결국 패전하면서 그의 운명 또한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개인적으로 전쟁을 피하려 했더라도 일본은 전쟁시대였고 이러한 군사적·정치적 체제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무조건 계속해서 수많은 전쟁터들에 뛰어들게 밀어넣었습니다.